수도군파 약사
수도군은
정종대왕의 7남으로 휘는 덕생(德生)이고 자는 회부(晦夫)이며 호는 묵은(默隱)이다.
어머니는 대사헌 방언(邦彦)의 딸인 숙의 해평윤씨이다. 해평윤씨는 수도군 · 임언군 · 석보군 · 장천군 등 4남과 인천옹주와 함안옹주 2녀를 두었는데 그 장남이 수도군이다. 초봉(初封)은 수도정(守道正)이고 품계는 명선대부였다. 중봉(重峰) 조헌(趙憲)은 <동현문집(東賢文集)>에서 수도군에 대해 이르기를 `조선 건국 초기에 수많은 명현과 절사가 있었으나 특히 종실의 여러 왕자 중 유독 수도군만이 부귀영화를 거절하고 충효겸전함으로써 세상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으며 백이(伯夷)의 절개가 있음으로써 또한 칭송을 받았다. 항상 호학수도에만 열중하고 당세의 동방의 안자(顔子)다.'라고 적고 있다.
수도군은 호를 `묵은(默隱)'이라 하고 양주(楊州) 묵은동에 은거하였다.
수도군은 묵은동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성현의 심법(心法)을 탐구하며 한가로이 보내다가 1449(세종 3)별세하였으며, 기일이 음력 7월 14일이라는 것만 전해오고 있다.
묘소는 서울 미아리에 있었으나 그 정위(正位)가 분명치 않았다. 세월이 흘러 1806년(순조 6) 가을 10대손인 도정공(都正公) 정인(廷仁)이 도평군(桃平君) 후손 매(梅), 종의군(從義君) 후손 창희(昌禧)의 가르침으로 표석 및 지석의 징표(徵表)를 확인, 이듬해에 봉심하여 수도정(守道正) · 어산부정(語山副正) 양위의 봉분을 개축하고 매년 음력 10월 1일 향사하였다. 1872년(고종 9)에 증 현록대부 영종정경, 시호는 `희정(僖靖)', 수도군으로 추봉되었다.
수도군은 3남을 두었다. 장남은 어산정 검(儉)이고 정의대부이며, 차남은 동림부정 엄(儼)이고 3남은 풍산부정 외이며 정의대부였다.
3세인 곤산정(崑山正) 숙조(淑祚)는 병사(兵使) 원주원씨 융(隆)의 딸인 신부인(愼夫人)을 맞이하여 6남을 두었으며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송우리 한당곡(閑堂谷) 간좌이다. 장남이 양곡부수 은이고 창선대부이다. 차남 연풍부수 강은 조졸하여 무후이며 3남은 지제부수(砥提副守) 공인데 그 후손들은 안양에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다. 4남은 중화부수(中和副守) 영(嶸)으로 무후이고 5남은 문등부수(文登副守) 윤(崙)이고 후손들은 평택과 남양주, 전남 장성에서 집단 거주하고 있다. 6남은 취산정(鷲山正) 수(岫)이고 창선대부이고 신부인(愼夫人) 성주이씨 문량(文樑)의 딸을 맞이하여 3남 2녀를 두었다. 장손 호의(好義)는 1597년 (선조 30) 진사로 정시문과에 장원급제, 병조좌랑 · 정언 · 사서 · 지평 · 평안도도사 · 장령 등을 역임하고 1609년(광해군 1) 고부사(告訃使)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동부승지와 우승지를 거쳐 1615년(광해군 7) 형조참판을 역임하고 1623년(인조 1) 양양(襄陽)부사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왕조실록>을 중간할 때 부교리로서 기주관(記注官) 이 되어 오랜 세월 동안 관직생활을 하였다.
수도군의 4대손인 헌충(憲忠)은 1505년(연산군 11)에 출생, 자는 공보(公輔)이고 숙부인(淑夫人) 안동김씨 동보(東保)의 딸을 맞아 3남을 두니 6세인 장남이 대수(大壽)이고 차남이 대명(大命)이고 3남이 대윤(大閏)이다. 당시 병화와 사화로 가족이 유리거산(流離居散)하여 안성, 고삼, 양성, 옹진, 영흥, 전남 화순군 남면 검산리와 남계리 등에서 후손들이 번성하였다.
6대손인 호문(好文)은 자는 사빈(士彬)으로 1547년(명종 2) 출생하여 선략장군 행 용양위부사직을 지냈으며 숙부인(淑夫人) 강릉김씨 충준(忠俊)의 딸을 맞이하여 삼락(三樂) · 삼성(三省) · 삼급(三及) · 삼근(三近)의 4남을 두어 후손이 번성하였다.
8대손인 양생(陽生)은 자는 복일(復一), 호는 구재(懼齋)로 1588년(선조 21)에 출생하였다. 선략장군 행 용양위 부사과를 지내고 증직으로 통훈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을 받고 슬하에 4남을 두었다.
9대손인 성시(聖時)는 1612년(광해군 4)에 출생하였다. 문과에 등과하여 교리를 지냈으며 저서로는 <천문지(天文誌)><천세일지(千歲日至)><우주총람(宇宙總覽)> 등 많은 저서가 있었으나 현재 <우주총람> 5권만 전한다.
10대손인 지린(之麟)은 자는 노서(魯瑞)이며 양천허씨 욱(稶)의 딸과 혼인하여 슬하에 2남을 두었다.
11대손인 하창(夏昌)은 자는 사우(士禹)이며 1663년(현종 4) 출생하고 은진송씨 경(璟)의 딸과 혼인하여 1남을 두었다.
12대손인 진화(震華)의 자는 인숙(寅叔)이며 1699년(숙종 25)에 출생하여 안동권씨 세정(世楨)의 딸과 혼인하였으며 1742년(영조 18)에 별세하였다. 그후 13·14·15대손까지는 실전(失傳)으로 후무되어 절손되어 왔다.
1872년(고종 9) 수도정(守道正)이 군으로 추봉되었으며 단종대왕 선위시 피화신원(被禍伸寃)되어 도정(都正)인 건용(健容), 병조참판과 한성부 우윤을 역임한 규하(奎夏), 선략장군행 훈련원판관을 지낸 규형(奎馨) 3인이 수도군 종회를 대표하여 종손계승 문제를 의논하고 종친부에 상소, 13대 종손으로 건용(健容)이 승계하기로 하였다. 공은 1825년(순조 25)에 출생하여 숙부인 무부사(武府使) 함양여씨 동면(東冕)의 딸과 혼인하였다. 공은 한성부 계동에 서 살았으며 진사를 거쳐 도정이 되었다. 또한 고종태황제에게 수도정을 군(君)으로 봉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14대 종손 규갑(奎甲)은 1842년(헌종 8) 9월 22일 출생하였다. 초명은 규삼(奎三)이고, 배위는 풍양조씨 만정(萬鼎)의 딸로 1남을 두었으며 참봉을 지냈다.
15대손인 장선(章善)은 자는 원문(元文)이고 1856년(철종 7) 3월 26일 출생하여 평소에 학업에 정진 진력하였다. 고령박씨 영목(永穆)의 딸과 혼인하여 1녀만 두고 1882년(고종 19) 별세하니 후사가 없어 계자로 승계하였다.
16대손인 승철(承哲)은 생부 용선(鏞善)의 2남으로 출계, 승계하였다. 1892년(고종 29) 6월 4일 출생하여 안동김씨 태연의 딸과 혼인하였으나 1913년 21세를 일기로 조졸하니 후사가 없으며, 묘소는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동대리 사정동 간좌이다.
17대손인 택수(澤秀)는 생부인 승만(承萬)의 차남으로 1913년 7월 8일 출생하여 출계, 승철의 계자로 승계하였다. 배위는 연주현씨 병문(炳文)의 딸로 1남을 두고 1938년 26세를 일기로 타계하였고 배위인 현씨도 1945년 별세하니 외아들인 병준(丙俊)이 대를 이었다.
18대 종손인 병준(丙俊)은 1932년 출생하였다. 1980년 10월 수도군 파종회가 구성되자 총무이사 · 재무이사를 역임하고 현재 파종회장의 책임도 맡고 있다.
종원 분포 상황
시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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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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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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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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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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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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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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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광주시
|
40
|
경기도
|
460
|
강원도
|
10
|
충청북도
|
130
|
창청남도
|
95
|
전라북도
|
40
|
전라남도
|
80
|
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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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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