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1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근원(根元) 1840∼1918 파명:전성군(全城君)
  초휘는 세원(世元), 자는 문중(文仲), 호는 배복와(?璞窩) 또는 금계(錦溪). 전성군의 11대손이며 아버지는 노가당(老稼堂) 양흡(養翕)이며 어머니는 전의이씨로 응배(應培)의 딸이다.
1866년(고종 3) 학문에 뜻을 두고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默)의 문하에 들어갔다.
공은 이항로의 학통을 계승하여 도학의 기본원리인 의리론을 추구하였다. 동문 류인석(柳麟錫)이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데 비해, 자신은 후진 양성에 힘쓰고 학문에 전념하는 한편, 저술을 통한 정신적인 투쟁을 하였다.
한말의 학자인 공은 시문집 <금계집>을 남겼는데 18권 4책으로 석인본(石印本)이다.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지재면 월산리 간좌이다.
1866년(고종 3) 학문에 뜻을 두고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默)의 문하에 들어갔다.
공은 이항로의 학통을 계승하여 도학의 기본원리인 의리론을 추구하였다. 동문 류인석(柳麟錫)이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데 비해, 자신은 후진 양성에 힘쓰고 학문에 전념하는 한편, 저술을 통한 정신적인 투쟁을 하였다.
한말의 학자인 공은 시문집 <금계집>을 남겼는데 18권 4책으로 석인본(石印本)이다.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지재면 월산리 간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