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4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동현(東鉉) 1809∼1877 파명:창원군(昌原君)
  동현(東鉉) [1809(순조 9)∼1877(고종 14)]
창원군의 11대손이며 노재(老載)의 아들로 생부는 인재(仁載)이다.
인물이 출중하고 재능이 뛰어나 천재라는 칭송을 받았다. 특히 육덕(六德 : 知仁聖義忠和)과 육행(六行 : 孝友睦칈任恤)과 육예(六藝 : 禮樂射御書數)의 도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문학 뿐 아니
라 무예에도 뛰어났다. 1839년(헌종 5) 무과에 급제하여 전사(典事) · 교부(校簿) · 도무(都務) 등을 거쳐 1850년(철종 1) 곡산군수로 나아가 선정을 베풀었고 1852년(철종 3) 평안도 도호부사, 1854년(철종 5) 충청도 수군절도사, 1865년(고종 2) 충청도 병마절도사, 1867년(고종 4) 경상도 병마절도사, 1869년(고종 6) 한성부 판윤을 지냈다.
배위는 정부인(貞夫人) 파평윤씨로 색(穡)의 딸과, 정부인 밀양박씨로 춘직(春稙)의 딸이며, 정부인 여흥민씨로 영하(泳夏)의 딸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후사가 없어 재종형 익현(翊鉉)의 차남 한구(漢龜)를 계자로 삼았다.
묘소는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우미천 아차산 하 건좌이다.
창원군의 11대손이며 노재(老載)의 아들로 생부는 인재(仁載)이다.
인물이 출중하고 재능이 뛰어나 천재라는 칭송을 받았다. 특히 육덕(六德 : 知仁聖義忠和)과 육행(六行 : 孝友睦칈任恤)과 육예(六藝 : 禮樂射御書數)의 도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문학 뿐 아니
라 무예에도 뛰어났다. 1839년(헌종 5) 무과에 급제하여 전사(典事) · 교부(校簿) · 도무(都務) 등을 거쳐 1850년(철종 1) 곡산군수로 나아가 선정을 베풀었고 1852년(철종 3) 평안도 도호부사, 1854년(철종 5) 충청도 수군절도사, 1865년(고종 2) 충청도 병마절도사, 1867년(고종 4) 경상도 병마절도사, 1869년(고종 6) 한성부 판윤을 지냈다.
배위는 정부인(貞夫人) 파평윤씨로 색(穡)의 딸과, 정부인 밀양박씨로 춘직(春稙)의 딸이며, 정부인 여흥민씨로 영하(泳夏)의 딸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후사가 없어 재종형 익현(翊鉉)의 차남 한구(漢龜)를 계자로 삼았다.
묘소는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우미천 아차산 하 건좌이다.
제(?) 1627∼1695 파명:창원군(昌原君)
  제(?) [1627(인조 5)∼1695(숙종 21)]
자는 수부(粹夫), 창원군의 5대손이며 화원도정의 손자이고 여룡(汝龍)의 아들이다.
1665년(현종 6) 별시 을과에 급제, 목사를 지냈다.
배위는 원주원씨 흔(昕)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다율리 냉정곡이다.
자는 수부(粹夫), 창원군의 5대손이며 화원도정의 손자이고 여룡(汝龍)의 아들이다.
1665년(현종 6) 별시 을과에 급제, 목사를 지냈다.
배위는 원주원씨 흔(昕)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다율리 냉정곡이다.
평(枰) 1727∼1803 파명:창원군(昌原君)
  평(枰) [1727(영조 3)∼1803(순조 3)]
자는 문지(文之), 창원군의 8대손이며 세적(世迪)의 아들이다.
1756년(영조 32) 정시 병과에 급제, 참판을 지냈다.
배위는 광산김씨 종언(宗彦)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월룡산 아래에 있다.
자는 문지(文之), 창원군의 8대손이며 세적(世迪)의 아들이다.
1756년(영조 32) 정시 병과에 급제, 참판을 지냈다.
배위는 광산김씨 종언(宗彦)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월룡산 아래에 있다.
한구(漢龜) ? ∼ ? 파명:창원군(昌原君)
  한구(漢龜) [ ? ∼ ? ]
창원군의 12대손이며 동현(東鉉)의 아들로 생부는 익현(翊鉉)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감찰을 지냈다.
배위는 박씨 계상(啓相)의 딸이다.
창원군의 12대손이며 동현(東鉉)의 아들로 생부는 익현(翊鉉)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감찰을 지냈다.
배위는 박씨 계상(啓相)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