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현군파 4세 약사에는 총 6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괴산군(槐山君) 1452∼1510 파명:익현군(翼峴君)
  휘는 지(漬), 시호는 강회(康懷). 가덕대부에 올랐다.
배위는 군부인 한산이씨이며 묘소는 배위와 함께 서울 쌍문동에 있었으나 구역정리 관계로 1961년 5월에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 지사동에 이장하였다.
배위는 군부인 한산이씨이며 묘소는 배위와 함께 서울 쌍문동에 있었으나 구역정리 관계로 1961년 5월에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 지사동에 이장하였다.
달성도정(達城都正) 1523∼ ? 파명:익현군(翼峴君)
  휘는 제(?), 명선대부에 올랐다.
명종대왕이 잠저시에 공의 집에서 자주 기거하였다. 달성도정은 성상을 받들어 성의와 공경을 다하여 거처가 평안하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후일 명종대왕은 화공에게 명하여 병풍을 그리게 하고 사간원에 명하여 시와 서문을 쓰게 하여 작위(爵位)를 더하였다. 하사받은 병풍은 소재가 불명하나 1562년(명종 17) 3월 사간원 사간 겸 지제교 강극성(姜克誠 : 1526∼1576)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지은 시문만이 전래되고 있다.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聖主龍潛昔屢過 玉武行時佳氣繞 金輿住處異香多
丹靑想像當年盛 景物依佈四節퓷 遠屋有陰皆寶樹
滿園無植不名花 名花綠窓朱戶仙 居廻盡棟 匠
즤華쿿井石池淸 更淨曲墻層?整 還斜風光得地
嬉遊穩凉煥宜人寢息 嘉更有主兒常禮敬能令
宸想自安和卽令寵遇 恩增渥從此流傳事加誇莫比
閭閻閑第宅門前過客탍停車
嘉靖四十一年 壬戌 三月
司諫院 司諫 兼 知製敎 臣 姜克誠 奉旨製進.
배위는 신부인 서산류씨와 신부인 상주이씨이다. 묘소는 서울 쌍문동에 있었으나 1961년 5월 구획정리 관계로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전곡리 갈마곡으로 이장하였고 배위 서산류씨는 실전되었고, 상주박씨의 묘소는 서신면 전곡리에 있다.
명종대왕이 잠저시에 공의 집에서 자주 기거하였다. 달성도정은 성상을 받들어 성의와 공경을 다하여 거처가 평안하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후일 명종대왕은 화공에게 명하여 병풍을 그리게 하고 사간원에 명하여 시와 서문을 쓰게 하여 작위(爵位)를 더하였다. 하사받은 병풍은 소재가 불명하나 1562년(명종 17) 3월 사간원 사간 겸 지제교 강극성(姜克誠 : 1526∼1576)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지은 시문만이 전래되고 있다.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聖主龍潛昔屢過 玉武行時佳氣繞 金輿住處異香多
丹靑想像當年盛 景物依佈四節퓷 遠屋有陰皆寶樹
滿園無植不名花 名花綠窓朱戶仙 居廻盡棟 匠
즤華쿿井石池淸 更淨曲墻層?整 還斜風光得地
嬉遊穩凉煥宜人寢息 嘉更有主兒常禮敬能令
宸想自安和卽令寵遇 恩增渥從此流傳事加誇莫比
閭閻閑第宅門前過客탍停車
嘉靖四十一年 壬戌 三月
司諫院 司諫 兼 知製敎 臣 姜克誠 奉旨製進.
배위는 신부인 서산류씨와 신부인 상주이씨이다. 묘소는 서울 쌍문동에 있었으나 1961년 5월 구획정리 관계로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전곡리 갈마곡으로 이장하였고 배위 서산류씨는 실전되었고, 상주박씨의 묘소는 서신면 전곡리에 있다.
성안정(成安正) ? ∼ ? 파명:익현군(翼峴君)
  휘는 정(禎), 명선대부에 올랐다.
배위는 신부인 고령신씨로 함(涵)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 선영 국내에 있다.
배위는 신부인 고령신씨로 함(涵)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 선영 국내에 있다.
익현군(翼峴君) 1431∼1464 파명:익현군(翼峴君)
  휘는 관(?), 시호는 충성(忠成). 흥록대부 수충위사 동덕좌익 1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배위 김제군부인은 평양조씨로 첨지 중추원사 철산(鐵山)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4리 지사동에 있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4리 지사동에 있다.
풍성령(豊城令) ? ∼ ? 파명:익현군(翼峴君)
  휘는 지(祉), 창선대부에 올랐다.
배위는 신인 평산신씨이며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 선영 국내에 있다.
배위는 신인 평산신씨이며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 선영 국내에 있다.
화산군(花山君) 1494∼1533 파명:익현군(翼峴君)
  휘는 해(諧), 생부는 의창군 손자 사산군이며 정의대부에 올랐다.
괴산군이 후사가 없어 김제군부인의 회갑을 맞아 1530년(중종 25)에 공이 선출되어 입계되었다. 공은 일찍이 종실의 영수가 되어 임금으로부터 특별한 은혜와 남다른 보살핌을 받아 만복을 누렸다.
배위는 여산송씨 사직령 호(湖)의 딸로 여흥현부인에 작봉되었으며 묘소는 익현군 묘에 있다.
괴산군이 후사가 없어 김제군부인의 회갑을 맞아 1530년(중종 25)에 공이 선출되어 입계되었다. 공은 일찍이 종실의 영수가 되어 임금으로부터 특별한 은혜와 남다른 보살핌을 받아 만복을 누렸다.
배위는 여산송씨 사직령 호(湖)의 딸로 여흥현부인에 작봉되었으며 묘소는 익현군 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