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평군파 4세 약사에는 총 1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전의부령(全義副令) ? ∼ ? 파명:의평군(義平君)
  휘는 팽근(彭根). 의상령의 셋째 아들로 창선대부이다. 모든 기록이 망실되어 출생년월일이 미상이며 11월 2일에 돌아간 것만 전해진다. 묘 역시 양주면이라고만 알 뿐 상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
배위는 신부인 남양홍씨로서 호군 석산(錫山)의 딸이며,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아들 수령(壽齡)은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성기리에 묘가 있다. 이를 미루어 짐작하면 전의부령이 돌아가자 양주면(소재미상)에 장사를 지낸 후 곧 황해도 평산군으로 은거하여 왕래가 두절됨으로써 실전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대들이 평산군 일대에 거주하며 전의부령의 묘의 실전을 통한하여 1929년에 사자(嗣者)인 수령의 묘 뒤 30보 거리 오좌에 설단하였다. 그러나 6 · 25전쟁으로 수많은 후손들이 월남, 서울을 거점으로 근교에 거주하며 조상에 대한 흠모와 망향의 정을 달래고자 모금을 통하여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산139의 1 소재 산을 매입하고, 1990년 10월 16일 설단 · 준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배위는 신부인 남양홍씨로서 호군 석산(錫山)의 딸이며,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아들 수령(壽齡)은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성기리에 묘가 있다. 이를 미루어 짐작하면 전의부령이 돌아가자 양주면(소재미상)에 장사를 지낸 후 곧 황해도 평산군으로 은거하여 왕래가 두절됨으로써 실전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 후대들이 평산군 일대에 거주하며 전의부령의 묘의 실전을 통한하여 1929년에 사자(嗣者)인 수령의 묘 뒤 30보 거리 오좌에 설단하였다. 그러나 6 · 25전쟁으로 수많은 후손들이 월남, 서울을 거점으로 근교에 거주하며 조상에 대한 흠모와 망향의 정을 달래고자 모금을 통하여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산139의 1 소재 산을 매입하고, 1990년 10월 16일 설단 · 준공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