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성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74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용직(容直) 1824∼1909 파명:밀성군(密城君)
  용직(容直) [1824(순조 24)∼1909(순종 3)]
자는 수경(受卿), 호는 정립재. 병구(秉九)의 장남이다.
1850년(철종 1) 증광문과에 급제, 현감 · 여주목사 · 양관제학 · 영남어사 · 경상감사 · 공조판서를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묘소는 황간 수석리 후록 자좌에 있다.
배위는 증 정경부인 하동정씨, 정경부인 전의이씨이다.
자는 수경(受卿), 호는 정립재. 병구(秉九)의 장남이다.
1850년(철종 1) 증광문과에 급제, 현감 · 여주목사 · 양관제학 · 영남어사 · 경상감사 · 공조판서를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묘소는 황간 수석리 후록 자좌에 있다.
배위는 증 정경부인 하동정씨, 정경부인 전의이씨이다.
용태(容泰) 1854∼1922 파명:밀성군(密城君)
  용태(容泰) [1854(철종 5)∼1922]
자는 경도, 병로(秉路)의 장남이다.
생원을 지내고 1885년(고종 22) 문과 급제하여 직각을 지내고 각국 공사관 참찬관 · 평리원 재판장 · 내부대신 · 궁내부 특진관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장릉리에 있다.
자는 경도, 병로(秉路)의 장남이다.
생원을 지내고 1885년(고종 22) 문과 급제하여 직각을 지내고 각국 공사관 참찬관 · 평리원 재판장 · 내부대신 · 궁내부 특진관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장릉리에 있다.
욱(旭) 1607∼1652 파명:밀성군(密城君)
  욱(旭) [1607(선조 40)∼1652(효종 3)]
자는 경승(景升), 춘성군의 5대손이며 선립(先砬)의 장남이다.
1633년(인조 11) 생원에 급제, 단양군수를 지내다 세자익위사 사어위를 역임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 선영 임좌에 있다.
배위는 평산신씨이다.
자는 경승(景升), 춘성군의 5대손이며 선립(先砬)의 장남이다.
1633년(인조 11) 생원에 급제, 단양군수를 지내다 세자익위사 사어위를 역임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 선영 임좌에 있다.
배위는 평산신씨이다.
원명(元命) 1653∼1723 파명:밀성군(密城君)
  원명(元命) [1653(효종 4)∼1723(경종 3)]
자는 선장(善長), 민휘(敏輝)의 장남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황해도 수사 절충장군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내리 비석가 석적동 을좌에 있다.
배위는 숙부인 광주정씨이다.
자는 선장(善長), 민휘(敏輝)의 장남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황해도 수사 절충장군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내리 비석가 석적동 을좌에 있다.
배위는 숙부인 광주정씨이다.
이명((?命) 1658∼1722 파명:밀성군(密城君)
  이명(?命) [1658(효종 9)∼1722(경종 2)]
자는 양숙(養叔), 호는 소재(疎齋), 시호는 충문(忠文). 민적(敏迪)의 3남이며 민채(敏采)에게 출계하였다.
1680년(숙종 6) 별시문과와 1686년(숙종 12) 중시 병과에 합격하였다. 원종공신 1등, 1687년(숙종 13) 통정대부에 올랐다. 그동안 지평 · 교리 · 세자익위사를 거쳤고,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영해에 귀양갔다가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로 호조참의에 기용되었다. 1698년(숙종 24) 대사간으로 있을 때 사명(師命)의 죄를 변호하다가 공주로 유배되었으나 이듬해 풀려나 대사헌이 되었다. 어필 배상(拜相)으로 병조 · 예조 · 이조판서, 강원 · 평안 · 경상감사, 의금부 동지사, 홍문관 제학을 지내면서 어사 · 홍문관 지제교도 지냈다. 이어 의금부 판사 · 내의원 제조를 거쳐 1706년(숙종 32)에 우의정, 1708년(숙종 34)에 좌의정이 되었다. 숙종대왕에게 가장 신임을 받아 왕과 독대한 일이 있고 숙종대왕이 승하하자 부고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천주교와 천문, 역사에 대한 서적을 가지고 오기도 했다. 1721년(경종 1) 노론4대가 중 한사람으로서 세제(世弟 : 英祖)로 대리청정할 것을 주장하다 소론의 무고로 남양에 귀양갔다가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壬士禍) 때에 서울로 압송 도중 한강에서 사사(賜死)되었다.
1725년(영조 1) 영조대왕이 즉위하자 관직이 복구되어 노량진에 사당을 세워 4대신을 모셨고 경기도 광주의 사충서원에 배향되고 남해 봉천서원에도 배향되었으며, 1725년(영조 1)에 신원되었으며 시호가 내려졌다. 문집에 <소재문집(疎齋文集)> 18권과 연보가 있다.
묘소는 충남 부여군 임천면 옥곡리 신좌에 예장하였다.
배위는 정경부인 광산김씨이다.
자는 양숙(養叔), 호는 소재(疎齋), 시호는 충문(忠文). 민적(敏迪)의 3남이며 민채(敏采)에게 출계하였다.
1680년(숙종 6) 별시문과와 1686년(숙종 12) 중시 병과에 합격하였다. 원종공신 1등, 1687년(숙종 13) 통정대부에 올랐다. 그동안 지평 · 교리 · 세자익위사를 거쳤고,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영해에 귀양갔다가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로 호조참의에 기용되었다. 1698년(숙종 24) 대사간으로 있을 때 사명(師命)의 죄를 변호하다가 공주로 유배되었으나 이듬해 풀려나 대사헌이 되었다. 어필 배상(拜相)으로 병조 · 예조 · 이조판서, 강원 · 평안 · 경상감사, 의금부 동지사, 홍문관 제학을 지내면서 어사 · 홍문관 지제교도 지냈다. 이어 의금부 판사 · 내의원 제조를 거쳐 1706년(숙종 32)에 우의정, 1708년(숙종 34)에 좌의정이 되었다. 숙종대왕에게 가장 신임을 받아 왕과 독대한 일이 있고 숙종대왕이 승하하자 부고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천주교와 천문, 역사에 대한 서적을 가지고 오기도 했다. 1721년(경종 1) 노론4대가 중 한사람으로서 세제(世弟 : 英祖)로 대리청정할 것을 주장하다 소론의 무고로 남양에 귀양갔다가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壬士禍) 때에 서울로 압송 도중 한강에서 사사(賜死)되었다.
1725년(영조 1) 영조대왕이 즉위하자 관직이 복구되어 노량진에 사당을 세워 4대신을 모셨고 경기도 광주의 사충서원에 배향되고 남해 봉천서원에도 배향되었으며, 1725년(영조 1)에 신원되었으며 시호가 내려졌다. 문집에 <소재문집(疎齋文集)> 18권과 연보가 있다.
묘소는 충남 부여군 임천면 옥곡리 신좌에 예장하였다.
배위는 정경부인 광산김씨이다.
인상(麟祥) 1710∼1760 파명:밀성군(密城君)
  인상(麟祥) [1710(숙종 36)∼1760(영조 36)]
자는 원령(元靈), 호는 능호(凌壺). 정지(挺之)의 차남이다.
진사에 급제하여 북부참봉을 지내고 음죽현감이 되었다가 관찰사와의 불화로 사직하고 단양 구담봉에 정자를 짓고 풍월로 세월을 보냈는데, 시문 그림 글씨에 모두 뛰어나 당대 3절(三絶)이라 칭송받았다. 특히 그림에는 산수화, 글씨에는 전서 주서에 뛰어났다. 문집 <능호문집(凌壺文集)> 2권과 그림 <옥류동도><검선도><송석도><한림수수도> 등이 있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내리 선영하에 있다.
배위는 덕수장씨이다.
자는 원령(元靈), 호는 능호(凌壺). 정지(挺之)의 차남이다.
진사에 급제하여 북부참봉을 지내고 음죽현감이 되었다가 관찰사와의 불화로 사직하고 단양 구담봉에 정자를 짓고 풍월로 세월을 보냈는데, 시문 그림 글씨에 모두 뛰어나 당대 3절(三絶)이라 칭송받았다. 특히 그림에는 산수화, 글씨에는 전서 주서에 뛰어났다. 문집 <능호문집(凌壺文集)> 2권과 그림 <옥류동도><검선도><송석도><한림수수도> 등이 있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내리 선영하에 있다.
배위는 덕수장씨이다.
장소(章紹) 1754∼1818 파명:밀성군(密城君)
  장소(章紹) [1754(영조 30)∼1818(순조 18)]
자는 백고(伯古), 건명의 현손이며 철상(徹祥)의 장남이다.
1792년(정조 16) 진사에 급제하여, 상주목사를 지내고 선정(善政)으로 유명했다. 통정대부 · 도정에 올랐으며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금촌읍 맥금리 선영 자좌에 있다.
배위는 정경부인 안동김씨이다.
자는 백고(伯古), 건명의 현손이며 철상(徹祥)의 장남이다.
1792년(정조 16) 진사에 급제하여, 상주목사를 지내고 선정(善政)으로 유명했다. 통정대부 · 도정에 올랐으며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금촌읍 맥금리 선영 자좌에 있다.
배위는 정경부인 안동김씨이다.
장오(章五) 1835∼1865 파명:밀성군(密城君)
  장오(章五) [1835(헌종 1)∼1865(고종 2)]
자는 여량(汝良), 관명(觀命)의 증손이며 윤상(輪祥)의 차남이다. 1854년(철종 5) 문과에 급제, 참판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축현리 열쌀미 선영하 을좌였는데, 1985년 농지객토사업 토지로 지정되어 부친 윤상 묘 경내로 이장하였다.
배위는 정부인 파평윤씨, 정부인 광산김씨, 정부인 은진송씨, 정부인 밀양박씨이다.
자는 여량(汝良), 관명(觀命)의 증손이며 윤상(輪祥)의 차남이다. 1854년(철종 5) 문과에 급제, 참판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축현리 열쌀미 선영하 을좌였는데, 1985년 농지객토사업 토지로 지정되어 부친 윤상 묘 경내로 이장하였다.
배위는 정부인 파평윤씨, 정부인 광산김씨, 정부인 은진송씨, 정부인 밀양박씨이다.
정량(廷亮) 1661∼1729 파명:밀성군(密城君)
  정량(廷亮) [1661(현종 2)∼1729(영조 5)]
자는 용경(龍卿), 해평수의 5대손이며 상윤(尙胤)의 장남이다.
1713년(숙종 39) 진사에 급제, 남원부사를 지냈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부묘 하 정좌이다.
배위는 안동권씨이다.
자는 용경(龍卿), 해평수의 5대손이며 상윤(尙胤)의 장남이다.
1713년(숙종 39) 진사에 급제, 남원부사를 지냈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부묘 하 정좌이다.
배위는 안동권씨이다.
정명(鼎命) 1642∼1700 파명:밀성군(密城君)
  정명(鼎命) [1642(인조 20)∼1700(숙종 26)]
자는 백응(伯凝), 민장(敏章)의 장남으로 1669년(현종 10) 진사가 되어 장악원 첨정에 오르고, 1687년(숙종 13)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응교 · 승지를 거쳐 의주부윤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내리 쌍곡 좌록 간좌에 있다.
배위는 증 정부인 전의이씨와 정부인 연산서씨이다.
자는 백응(伯凝), 민장(敏章)의 장남으로 1669년(현종 10) 진사가 되어 장악원 첨정에 오르고, 1687년(숙종 13)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응교 · 승지를 거쳐 의주부윤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내리 쌍곡 좌록 간좌에 있다.
배위는 증 정부인 전의이씨와 정부인 연산서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