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33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흥경(興慶) 1749∼1813 파명:양원군(楊原君)
 흥경(興慶) [1749(영조 25)∼1813(순조 13)]
자는 선여(善餘), 양원군의 8대손으로 1749년(영조 25) 9월 4일 태어나 향년 65세로 1813년(순조 13) 10월 14일에 별세하였다. 증조 삼석(三碩)은 관찰사를 지냈고 조부 휘원은 선교랑를 지냈다. 부친 명복(命馥)은 출계하여 숙부 희원의 후사가 되었다. 배위 풍양조씨는 이조참판 택명(宅命)의 딸로 천성이 인자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을 섬기는데 정성과 공경을 다하였다. 평소에는 말이 적고 문밖 출입도 하지 않고 책을 읽었으며 세상일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어둔리 후곡의 미륵동 선부군(先父君) 묘하에서 10여 보 떨어진 간좌에 안장하였다. 1남을 두었으니 윤익(允益)이다.
자는 선여(善餘), 양원군의 8대손으로 1749년(영조 25) 9월 4일 태어나 향년 65세로 1813년(순조 13) 10월 14일에 별세하였다. 증조 삼석(三碩)은 관찰사를 지냈고 조부 휘원은 선교랑를 지냈다. 부친 명복(命馥)은 출계하여 숙부 희원의 후사가 되었다. 배위 풍양조씨는 이조참판 택명(宅命)의 딸로 천성이 인자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을 섬기는데 정성과 공경을 다하였다. 평소에는 말이 적고 문밖 출입도 하지 않고 책을 읽었으며 세상일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어둔리 후곡의 미륵동 선부군(先父君) 묘하에서 10여 보 떨어진 간좌에 안장하였다. 1남을 두었으니 윤익(允益)이다.
흥일(興一) 1739∼1814 파명:양원군(楊原君)
  흥일(興一) [1739(영조 15)∼1814(순조 14)]
자는 자시(子始), 호는 국헌(菊軒). 공은 양원군의 8대손으로 1739년(영조 15) 9월 18일 태어나 향년 76세로 1814년(순조 14) 2월 4일에 별세하였고 모친은 풍양조씨로 진사 택명(宅命)의 딸이다. 백부인 쌍계공 명흠(命欽)의 후사가 되었다.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지내고 후에 통정대부 이조참의가 되었다. 배위는 숙인 전주최씨로 통덕랑 홍좌(弘佐)의 딸로 1남을 두었으니 윤겸(允謙)이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어둔리 후곡 남쪽 근동갑에 예장하였다.
자는 자시(子始), 호는 국헌(菊軒). 공은 양원군의 8대손으로 1739년(영조 15) 9월 18일 태어나 향년 76세로 1814년(순조 14) 2월 4일에 별세하였고 모친은 풍양조씨로 진사 택명(宅命)의 딸이다. 백부인 쌍계공 명흠(命欽)의 후사가 되었다.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지내고 후에 통정대부 이조참의가 되었다. 배위는 숙인 전주최씨로 통덕랑 홍좌(弘佐)의 딸로 1남을 두었으니 윤겸(允謙)이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어둔리 후곡 남쪽 근동갑에 예장하였다.
희원(希遠) 1690∼1712 파명:양원군(楊原君)
  희원(希遠) [1690(숙종 16)∼1712(숙종 38)]
자는 경천(景天), 양원군의 6대손으로 1690년(숙종 16) 12월 27일 생이며 1712년(숙종 38) 6월 27일에 별세하였다. 배위 여산송씨는 영의정 질의 후손이다. 자녀가 없어 공의 형 휘원(輝遠)의 둘째 아들인 명복(命馥)이 후사가 되어 2남 1녀를 두었다. 장남은 흥일(興一)이고 차남은 흥경(興慶)이고 딸은 현감 조진곤(趙鎭坤)에게 출가했다. 묘소는 양주 어둔리 선영 감사공 묘 좌측아래 자좌에 있다.
자는 경천(景天), 양원군의 6대손으로 1690년(숙종 16) 12월 27일 생이며 1712년(숙종 38) 6월 27일에 별세하였다. 배위 여산송씨는 영의정 질의 후손이다. 자녀가 없어 공의 형 휘원(輝遠)의 둘째 아들인 명복(命馥)이 후사가 되어 2남 1녀를 두었다. 장남은 흥일(興一)이고 차남은 흥경(興慶)이고 딸은 현감 조진곤(趙鎭坤)에게 출가했다. 묘소는 양주 어둔리 선영 감사공 묘 좌측아래 자좌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