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성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74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신(伸) 1686∼? 파명:밀성군(密城君)
  신(伸) [1686(숙종 12)∼? ]
자는 시중(時中), 광원군의 6대손이며 성명(星命)의 차남이다.
1722년(경종 2) 무과 을과 급제, 1738년(영조 14)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이 되고, 1745년(영조 21) 통정대부가 되었다. 이어 구례현감 · 순천병마랑제도위를 지냈다.
묘소는 전북 임실군 지사면 계산리 방축곡 간좌에 있다.
배위는 숙부인 해주오씨이다.
자는 시중(時中), 광원군의 6대손이며 성명(星命)의 차남이다.
1722년(경종 2) 무과 을과 급제, 1738년(영조 14)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이 되고, 1745년(영조 21) 통정대부가 되었다. 이어 구례현감 · 순천병마랑제도위를 지냈다.
묘소는 전북 임실군 지사면 계산리 방축곡 간좌에 있다.
배위는 숙부인 해주오씨이다.
연상(衍祥) 1719∼1782 파명:밀성군(密城君)
  연상(衍祥) [1719(숙종 45)∼1782(정조 6)]
자는 천여(天汝), 술지(述之)의 아들이며 성지(性之)의 계자이다.
1759년(영조 35) 진사 · 현령을 지내고, 1770년(영조 46) 식년정시 문과에 급제, 이조판서, 판의금부사 · 경상감사 등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가평군 구정리 묘좌에 있다.
배위는 정경부인 해평윤씨이다.
자는 천여(天汝), 술지(述之)의 아들이며 성지(性之)의 계자이다.
1759년(영조 35) 진사 · 현령을 지내고, 1770년(영조 46) 식년정시 문과에 급제, 이조판서, 판의금부사 · 경상감사 등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가평군 구정리 묘좌에 있다.
배위는 정경부인 해평윤씨이다.
용기(容琦) 1869∼1945 파명:밀성군(密城君)
  용기(容琦) [1869(고종 6)∼1945]
자는 경규, 병일의 장남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첨추를 지냈다.
묘소는 충북 청원군 남일면 금반 중앙 곤좌에 있다.
자는 경규, 병일의 장남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첨추를 지냈다.
묘소는 충북 청원군 남일면 금반 중앙 곤좌에 있다.
용기(容琦) 1869∼1945 파명:밀성군(密城君)
  용기(容琦) [1869(고종 6)∼1945]
밀성군의 14대손으로 1890년(고종 27) 무과에 급제,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과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지냈다.
밀성군의 14대손으로 1890년(고종 27) 무과에 급제, 절충장군 행 용양위 부호군과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지냈다.
용달(容達) 1828∼1895 파명:밀성군(密城君)
  용달(容達) [1828(순조 28)∼1895(고종 32)]
자는 원립(元立), 병기(秉琦)의 장남이다.
무과 급제, 절충장군 겸 오위장을 지냈다.
묘소는 천안 상지경계하 신좌에 있다.
배위는 숙부인 여흥민씨이다.
자는 원립(元立), 병기(秉琦)의 장남이다.
무과 급제, 절충장군 겸 오위장을 지냈다.
묘소는 천안 상지경계하 신좌에 있다.
배위는 숙부인 여흥민씨이다.
용립(容立) 1842∼? 파명:밀성군(密城君)
  용립(容立) [1842(헌종 8)∼? ]
자는 덕윤(德潤), 광원군의 11대손이며 병룡(秉龍)의 장남이다.
진사에 급제하여 도사 · 비서승지를 지냈다.
묘소는 갈현리 진좌에 있다.
배위는 숙부인 창원황씨이다.
자는 덕윤(德潤), 광원군의 11대손이며 병룡(秉龍)의 장남이다.
진사에 급제하여 도사 · 비서승지를 지냈다.
묘소는 갈현리 진좌에 있다.
배위는 숙부인 창원황씨이다.
용선(容善) 1863∼19 파명:밀성군(密城君)
  용선(容善) [1863(철종 14)∼1915]
자는 원지(元之), 병문(秉文)의 장남이다.
증광문과에 급제하고 대교를 거쳐 참판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선산 미좌에 있다.
자는 원지(元之), 병문(秉文)의 장남이다.
증광문과에 급제하고 대교를 거쳐 참판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선산 미좌에 있다.
용원(容元) 1832∼1911 파명:밀성군(密城君)
  용원(容元) [1832(순조 32)∼1911(명치 44)]
자는 경춘(景春), 호는 하석. 병은(秉殷)의 계자이며 생부는 병식(秉植)이다.
1858년(철종 9) 진사 · 금산군수를 지내고, 1875년(고종 1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춘천부사를 지내고 대사성 · 승지를 역임했다. 1869년(고종 6)에 가선대부가 되고 광주유수 · 호조참판 · 대사간 · 대제학을 지내고, 명성태황후가 평양에 이궁(離宮)을 짓는 것을 반대상소하여 흑산도에 귀양갔다. 후에 기로소에 들었다. 문집 20권이 있다.
묘소는 충남 부여군 임천면 옥곡리 해좌에 있다.
배위는 증 정경부인 광산김씨이다.
자는 경춘(景春), 호는 하석. 병은(秉殷)의 계자이며 생부는 병식(秉植)이다.
1858년(철종 9) 진사 · 금산군수를 지내고, 1875년(고종 1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춘천부사를 지내고 대사성 · 승지를 역임했다. 1869년(고종 6)에 가선대부가 되고 광주유수 · 호조참판 · 대사간 · 대제학을 지내고, 명성태황후가 평양에 이궁(離宮)을 짓는 것을 반대상소하여 흑산도에 귀양갔다. 후에 기로소에 들었다. 문집 20권이 있다.
묘소는 충남 부여군 임천면 옥곡리 해좌에 있다.
배위는 증 정경부인 광산김씨이다.
용은(容殷) 1826∼1871 파명:밀성군(密城君)
  용은(容殷) [1826(순조 26)∼1871(고종 8)]
자는 원신(元伸), 병직(秉直)의 3남이며 용준(容準)의 아우이다.
1850년(철종 1) 증광문과 급제, 참의 · 승지 ·참판을 지냈다.
묘소는 충남 부여군 정암면 석동리에 있다.
배위는 정부인 양주조씨, 정부인 청도김씨이다.
자는 원신(元伸), 병직(秉直)의 3남이며 용준(容準)의 아우이다.
1850년(철종 1) 증광문과 급제, 참의 · 승지 ·참판을 지냈다.
묘소는 충남 부여군 정암면 석동리에 있다.
배위는 정부인 양주조씨, 정부인 청도김씨이다.
용준(容準) 1816∼1901 파명:밀성군(密城君)
  용준(容準) [1816(순조 16)∼1901(광무 5)]
자는 원평(元平), 이명(?命)의 6대손이며 병직(秉直)의 장남이다.
군수 · 목사 · 공조참의를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오리동에 있다.
배위는 연안김씨, 대구서씨, 청도김씨, 전의이씨이다.
자는 원평(元平), 이명(?命)의 6대손이며 병직(秉直)의 장남이다.
군수 · 목사 · 공조참의를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오리동에 있다.
배위는 연안김씨, 대구서씨, 청도김씨, 전의이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