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녕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152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빈(?) 1630∼1674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여고(汝固), 단산도정의 6대손 후배(厚培)의 아들이다. 벼슬은 충익위장에 이르렀다.
묘소는 충북 청주시 정산촌 지장산 선영하이다. 배위는 숙인 진주정씨로 통덕랑 선(選)의 딸이다. 슬하에 인보(仁溥) · 의보(義溥) · 지보(智溥) · 신보(信溥) 4남을 두었다.
묘소는 충북 청주시 정산촌 지장산 선영하이다. 배위는 숙인 진주정씨로 통덕랑 선(選)의 딸이다. 슬하에 인보(仁溥) · 의보(義溥) · 지보(智溥) · 신보(信溥) 4남을 두었다.
사건(師騫) 1543∼1576 파명:경녕군(敬寧君)
  호는 남재(南齋), 모양군의 증손 희년(希年)의 아들이다. 벼슬은 충익위장에 이르렀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삼하리 서산 자좌이다. 배위는 영인 배천조씨로 윤상(潤商)의 딸과, 영인 파평윤씨로 명형(命亨)의 딸이다. 슬하에 춘백(春白) · 춘광(春光) · 광귀(光貴) 3남을 두었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삼하리 서산 자좌이다. 배위는 영인 배천조씨로 윤상(潤商)의 딸과, 영인 파평윤씨로 명형(命亨)의 딸이다. 슬하에 춘백(春白) · 춘광(春光) · 광귀(光貴) 3남을 두었다.
사의(士義) 1552∼1590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의중(宜仲), 모양군의 증손 희강(希剛)의 아들이다. 과천현감을 지냈다.
묘소는 황해도 벽성군 운산면 황금리 금장산하 간좌이다. 배위는 의인 평창이씨로 증 참판 천추(千秋)의 딸이다. 슬하에 수백(秀白) · 흥백(興白) 2남을 두었다.
묘소는 황해도 벽성군 운산면 황금리 금장산하 간좌이다. 배위는 의인 평창이씨로 증 참판 천추(千秋)의 딸이다. 슬하에 수백(秀白) · 흥백(興白) 2남을 두었다.
상(相) 1685∼1758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국보(國輔), 단산도정의 7대손 창제(昌霽)의 아들이다. 증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를 하였다.
묘소는 장단군 강동면 기곡리 건좌이다. 배위는 숙부인 남양박씨로 계림(繼林)의 딸이다. 슬하에 시훈(時薰) · 시무(時茂) · 시영(時英) · 시화(時華) · 시만(時萬) 5남을 두었다.
묘소는 장단군 강동면 기곡리 건좌이다. 배위는 숙부인 남양박씨로 계림(繼林)의 딸이다. 슬하에 시훈(時薰) · 시무(時茂) · 시영(時英) · 시화(時華) · 시만(時萬) 5남을 두었다.
상규(尙揆) 1619∼1636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백상(伯相), 모양군의 5대손 성구(聖求)의 아들이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성이 함락될 때까지 싸웠다. 적이 매우 가까이 다가오자 침탈이 극심하였으나, 공은 이에 굴하지 않고 싸우다가 화살 13개를 맞고 순국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삼하리 지봉공 묘 좌록이다. 배위는 능성구씨로 감사 봉서(鳳瑞)의 딸이다. 부군과 함께 순절해 나라에서 정려문을 내렸다. 슬하에 자식이 없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삼하리 지봉공 묘 좌록이다. 배위는 능성구씨로 감사 봉서(鳳瑞)의 딸이다. 부군과 함께 순절해 나라에서 정려문을 내렸다. 슬하에 자식이 없다.
상성(尙誠) 1747∼1784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경우(景友), 모양군의 9대손 익주(翊胄)의 아들이다. 1827년(순조 27)에 증 이조참판이 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도수리 오좌이다. 배위는 정부인 풍산홍씨로 동지중추부사 복호(復浩)의 딸이다. 슬하에 영하(瀅夏) · 명하(溟夏) 2남을 두었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도수리 오좌이다. 배위는 정부인 풍산홍씨로 동지중추부사 복호(復浩)의 딸이다. 슬하에 영하(瀅夏) · 명하(溟夏) 2남을 두었다.
서조(瑞朝) 1730∼1778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맹양(孟陽), 대사성 형욱(馨郁)의 6대손이다. 1760년(영조 36)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좌승지에 올랐다. 배위는 숙부인 나주정씨로 진사 가신(可愼)의 딸이다.
석(錫) 1624∼1703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대래(大賚), 단산도정의 6대손 익배(益培)의 아들이다. 음사로 부사와 통정대부를 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통구리이다. 배위는 숙부인 함평이씨로 목사 침(沈)의 딸과 숙부인 문화류씨로 선교랑 진(振)의 딸이다. 슬하에 중보(重溥) · 준보(俊溥) · 남보(南溥) 3남을 두었다.
묘소는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통구리이다. 배위는 숙부인 함평이씨로 목사 침(沈)의 딸과 숙부인 문화류씨로 선교랑 진(振)의 딸이다. 슬하에 중보(重溥) · 준보(俊溥) · 남보(南溥) 3남을 두었다.
석규(碩揆) 1627∼1669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거공(鉅公). 모양군의 5대손 성구(聖求)의 아들이다. 1652년(효종 3) 문과, 사마 양시에 합격하여 단성현감이 되고, 찰방·금부도사를 거쳐 호조좌랑에 이르렀다. 증 이조참판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모친이 순절하자 홀로 시신을 지키며 적이 와도 피하지 않고 통곡하였다. 그 효가 임금에게까지 알려졌다.
묘소는 통진 고리 계좌(현 김포시 대곳면 중생리)이다. 배위는 정부인 여흥민씨로 좌랑 성복(聖復)의 딸이다. 슬하에 현조(玄祚) 1남을 두었다.
묘소는 통진 고리 계좌(현 김포시 대곳면 중생리)이다. 배위는 정부인 여흥민씨로 좌랑 성복(聖復)의 딸이다. 슬하에 현조(玄祚) 1남을 두었다.
선(銑) 1627∼1679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여윤(汝潤), 단산도정의 6대손 후배(厚培)의 아들이다. 증 좌승지 경연참찬관이 되었다.
묘소는 충북 청주시 정산촌 선영하이다. 배위는 정부인 남양홍씨로 증 승지 이신(쳶愼)의 딸이다. 슬하에 광보(廣溥) · 장보(長溥) 2남을 두었다.
묘소는 충북 청주시 정산촌 선영하이다. 배위는 정부인 남양홍씨로 증 승지 이신(쳶愼)의 딸이다. 슬하에 광보(廣溥) · 장보(長溥) 2남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