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평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28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성봉(晟鳳) 1823∼1899 파명:순평군(順平君)
  초휘는 화민(化民), 만운(萬運)의 아들이며 가선대부 호조참판을 추증받았다.
배위는 정부인 풍산홍씨로 영길(永吉)의 딸이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
배위는 정부인 풍산홍씨로 영길(永吉)의 딸이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
성원(聖元) 1674∼1739 파명:순평군(順平君)
  자는 현백(顯伯), 진화(震華)의 아들로서 통정대부이고 통덕랑을 역임했다. 배위는 온인 봉화정씨로 유설(維卨)의 딸이며, 2남을 두었다.
수덕(壽德) 1747∼1784 파명:순평군(順平君)
  자는 경함(景咸), 규회의 3남으로 무과 첨추 · 당상 정3품을 역임하였다. 1747년(영조 23) 5월 26일에 태어나 1784년(정조 8) 8월 7일에 별세했다.
배위는 평산신씨 명현(命顯)의 딸이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
배위는 평산신씨 명현(命顯)의 딸이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
언성(彦成) 1621∼1691 파명:순평군(順平君)
  형길의 아들로서 문과 통정대부이고 성주목사를 역임했다.
배위는 신부인 창녕조씨로서 군수 흥업(興業)의 딸이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
배위는 신부인 창녕조씨로서 군수 흥업(興業)의 딸이다. 슬하에 1남을 두었다.
의로(義老) 1532∼1586 파명:순평군(順平君)
  정주부령 팽손의 아들로서 통정대부이며 하동부사를 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남양홍씨로서 판서 처명(處明)의 딸이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배위는 숙부인 남양홍씨로서 판서 처명(處明)의 딸이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인렬(仁烈) 1814∼1856 파명:순평군(順平君)
  의빈(懿彬)의 아들이며 통정대부 이조정랑 · 필선 · 동부승지 겸 경연 참찬관 · 부호군을 지냈다.
배위는 연안송씨 광(光)의 딸이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배위는 연안송씨 광(光)의 딸이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인봉(仁鳳) 1801∼1871 파명:순평군(順平君)
  호는 죽하(竹下), 만현(萬賢)의 아들이며 가선대부 병조판서를 추증받았다.
배위는 정부인 광산김씨로 기열(箕烈)의 딸이다. 슬하에 2남을 두었다.
배위는 정부인 광산김씨로 기열(箕烈)의 딸이다.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인순(麟淳) 1868∼1931 파명:순평군(順平君)
  자는 덕중(德仲), 호는 회은(悔隱). 민호(敏鎬)의 아들이며 진사에 급제했다. <정미창의록(丁未倡義錄)>에 의하면 `인물됨됨이 간장이 철석 같고 빙옥의 자태이다\' 하였다. 기미독립운동을 펼치다 발각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의당 독립유공자로 추앙받아야 하나 불행히도 후손들이 북녘땅에 살기 때문에 관련된 문헌을 구하지 못하여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배위는 평산신씨 만영(萬永)의 딸이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다.
배위는 평산신씨 만영(萬永)의 딸이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다.
재록(載祿) 1806∼1882 파명:순평군(順平君)
  자는 윤수(允壽), 사묵(思默)의 아들이다.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행 용양위 부호군이다. 배위는 풍천임씨, 함안조씨, 청주한씨 수인(守仁)의 딸이다. 슬하에 1남 6녀를 두었다.
종황(鍾璜) 1806∼1874 파명:순평군(順平君)
  자는 현옥(玄玉), 정복(廷復)의 장남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 · 건원릉 참봉(健元陵 參奉)을 지냈다.
배위는 함평이씨 유숙(儒叔)의 딸이다. 후손이 없어서 동생 종찬(鍾瓚)의 아들 우한(禹漢)을 양자로 삼았다.
배위는 함평이씨 유숙(儒叔)의 딸이다. 후손이 없어서 동생 종찬(鍾瓚)의 아들 우한(禹漢)을 양자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