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녕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152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촉(矗) 1577∼1640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여형(汝亨), 호는 동호(東湖). 가림군의 현손 유인(裕仁)의 아들이다. 1606년(선조 39)에 생원이 되고 1623년(인조 1)에 장기현감에 이어 영흥부사를 지냈다. 임진왜란 때 여러 형제가 전장에 모두 나가 홀로 어버이를 모셨다.
 묘소는 금릉군 남면 운남동 불현 오좌이다. 부인은 숙부인 여흥민씨로 현령 사안(思安)의 딸이다. 슬하에 익만(益萬) · 익신(益信) 2남을 두었다.

충운(?雲) 1606∼1669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운장(雲長), 모양군의 현손 성광(成光)의 아들이다. 양지현감 겸 수원진관 병마절제도위를 거치고, 통훈대부에 올랐다.
 묘소는 충북 진천군 덕산면 구산리 계좌이다. 배위는 숙인 광산김씨로 창세(昌世)의 딸이다. 슬하에 시분(時奮) · 시달(時達) · 시헌(時獻) · 시원(時元) 4남을 두었다.

침(沈) 1523∼ ?    파명:경녕군(敬寧君)
  서릉군의 아들이다. 행 충좌위 부사과를 하였다. 증 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의금부사 · 홍문관 대제학 · 경연사 · 오위도총관이 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신남리 은산도정 묘하 자좌이다. 배위는 증 정부인 밀양박씨로 병절교위 익년(益年)의 딸과 증 정부인 죽산박씨로 세기(世基)의 딸이다. 슬하에 정욱(廷郁) · 문욱(文郁) · 현욱(顯郁) 3남을 두었다.

태경(台卿) 1689∼1755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매숙(梅叔), 복성군의 10대손 만백(萬白)의 아들이다. 행 용양위 호군을 하고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이 되었다.
 묘소는 전남 영암군 신북면 갈곡 선영하 해좌이다. 배위는 정부인 나주정씨로 업(業)의 딸이다. 슬하에 봉운(鳳雲) · 봉래(鳳來) 2남을 두었다.

하(厦) 1574∼1649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서도(픊度), 호는 한사(寒沙). 가림군의 현손 홍인(弘仁)의 아들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16년(광해군 8) 증광시에 생원으로, 이어 진사로 신방(新榜) 급제하였다.
 공은 광해군 때의 어지러운 난국 속에서 간신들의 거듭된 폐모 상소에 불참하고,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가 잠곡(潛谷) 김육(金堉) 선생과 도의를 강론하였다. 1623년(인조 1) 반정 초에 임금이 광릉참봉에 봉무할 것을 특별히 명하였다. 이괄의 난 때 분연히 의기하여 도원수 장만(張晩) 휘하에 들어가 역적 토벌에 헌충하였다. 병자호란 때에는 임금을 남한산성까지 호종하였다. 감찰에 오르고 홍산현감을 지냈다.
 묘소는 천안시 서하 소지 경좌이다. 배위는 의인 연안김씨로 현령 한(翰)의 딸이다. 슬하에 익회(益繪) · 익환(益煥) · 익형(益馨) · 익규(益奎) · 익화(益華) · 익량(益亮) · 익진(益珍) 7남을 두었다.
한겸(漢謙) 1675∼1750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경숙(敬叔), 호는 무실옹(楙實翁). 모양군의 7대손 현석(玄錫)의 계자로 생부는 현령(玄齡)이다. 1708년(숙종 34)에 생원하여 참봉을 지내고, 정랑에 올랐다. 음성 · 온양 · 진산을 다스릴 때 치적이 뛰어났다. 1745년(영조 21) 에 도정을 하였다. 경녕군의 별립 종손으로 입사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군 도척면 방도리 계좌이다. 배위는 숙부인 파평윤씨로 군수 이복(以復)의 딸이다. 슬하에 익주(翊胄) 1남을 두었다.

한보(漢輔) 1675~1748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중호(仲皓), 호는 졸은(拙隱). 모양군의 7대손 현조(玄祚)의 아들로 생부는 현량(玄亮)이다. 학행이 뛰어나 향당의 규범이 되고 문집 <졸은집(拙隱集)> 4권을 남겼다.
 묘소는 충남 공주시 계룡면 시화리 자좌이다. 배위는 풍산홍씨로 교리 중현(重玄)의 딸이다. 슬하에 덕주(悳胄) · 혜주(惠胄) · 헌주(憲胄) 3남을 두었다.

한종(漢宗) 1664∼1693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백달(伯達), 모양군의 7대손 현기(玄紀)의 장남이다. 1689년(숙종 15)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에 이르렀다.
 묘소는 양주군 서산이다. 배위는 의인 풍산홍씨로 교리 만수(萬遂)의 딸이다. 슬하에 흥주(興胄) · 계주(啓胄) 2남을 두었다.

한척(漢陟) 1694∼1716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수화(守和), 모양군의 7대손 현조(玄祚)의 아들이다.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를 하였다.
 묘소는 임천 수철리 병좌이다. 배위는 정부인 횡성조씨로 감사 식(湜)의 딸이다. 계자가 사주(思胄)이다. 사주의 생부는 한좌(漢佐)이다.

항령(恒齡) 1736∼ ?    파명:경녕군(敬寧君)
  자는 사영(士泳), 은천군의 9대손 지일(志一)의 아들이다.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가 되었다.
 묘소는 원흥덕 일동면 내토진 안산 곤좌이다. 배위는 숙부인 전주최씨로 통정대부 언익(彦益)의 딸이다. 슬하에 서훈(瑞勳) 1남을 두었다.